세계 경제

미래를 읽는 눈과 혁신의 리더십/ 아마존닷컴 CEO 제프 베조스

"제프 베조스는 한 번도 혁신을 멈춘 적이 없는 미래지향형 기업인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아마존닷컴의 CEO(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를 일컬어 표현한 말이다. 1994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 서점을 선보인 이래 전자책 킨들로 ‘책의 디지털화’를 선언하고 최근에는 음성 인식 비서 알렉사와 이를 탑재한 스피커 에코를 선보여 이 시장의 리더가 됐다.


킨들, 알렉사 개발로 미래 산업 방향 제시
1994년 시애틀의 차고에서 ‘세계 최초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여전히 뜨거운 이슈를 만들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31일, 아마존의 주가는 장중 1000달러를 돌파했다. 1997년 나스닥에 18달러로 상장한 이래 20년 만에 꿈의 주가인 1000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아마존은 단순히 온라인 서점에 그치지 않는다. 전자제품, 장난감, 옷, 신발,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해 ‘온라인 월마트’로 불린다. 그 다음 아마존의 도전은 ‘독서의 방법을 바꾸는 법’이었다. 그것은 전자책 킨들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고 킨들은 독자의 아날로그 독서취향을 감안한 맞춤형 태블릿으로 진화했다. 킨들은 단순한 독서용 태블릿에서 발전해 이제 애플의 아이패드에 이어 미국 내 시장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아마존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이른바 ‘아마존 웹 서비스 Amazon Web Service(AWS)’라 불리는 ‘서버 대여’를 통해 아마존은 전 세계 서버 공유 시장을 장악하면서 IT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이뿐이 아니다. 제프 베조스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시작된 우주항공프로젝트는 ‘블루 오리진’이라는 우주 개발회사를 탄생시켰고, 이 회사에서는 (NASA 이외의 민간 자본으로서는) 독보적인 우주 로켓 엔진과 누구나 신청만 하면 가능한 우주여행 상품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하나 들 수 있는 아마존의 성공과 개척 정신은 바로 인공지능 ‘알렉사’의 개발이다. 단순한 스피커처럼 생긴 에코에 장착된 알렉사는 간단했던 초기 모델에서 점차 진화하고 있다. 이 알렉사는 IT업계에서 이른바 ‘아마존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애플, 구글, MS를 비롯해, 삼성전자 등 세계 최고의 IT기업들이 인공지능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마존이 새로운 IT생태계를 만드는 기준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2016년도 매출 1600억 달러밖에 안 되는 아마존이 매출 규모에 비해 IT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것은 아마존의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아마존의 본질은 ‘개척자’이다. 인터넷전자상거래, 서버 공유, 우주항공, 인공지능 등 아마존의 선택은 성공으로 그 결과를 시장에 내놓았고 미래 산업의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양아버지, 롤모델로 삼아
이렇듯 아마존의 끊임없는 혁신 뒤에는 CEO(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의 미래를 읽는 눈과 과감한 도전이 있었다.
제프 베조스는 1964년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재키 기스 요겐슨이 뉴멕시코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7세 때였다. 그녀는 18개월 후 테드 요겐슨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싱글맘’이 됐다.

그에게 ‘베조스’라는 성을 물려준 사람은 양아버지 미겔 베조스다. 미겔 베조스는 1962년 쿠바에서 탈출한 이민자였다. 미겔은 쿠바 난민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는 앨버커키대를 다니고 밤에는 뉴멕시코 은행에서 근무하며 생계를 꾸렸다. 제프의 어머니도 이 은행을 다니던 중 미겔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제프가 네 살이 되던 1968년 결혼식을 올렸다. 미겔은 제프를 입양했다. 미겔은 제프의 롤모델이었고, 훗날 제프가 사업가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겔은 특유의 성실함과 명석한 두뇌로 훗날 엑손의 경영진에 올랐다.
제프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자아와 총기를 드러냈다. 세 살 때 이미 아기 침대 대신 어른 침대를 써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몇 시간 뒤 자신이 드라이버를 들고 스스로 아기 침대를 분리해 일반 침대로 바꾸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방 출입문에 임시 사이렌을 달아 어린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게 만든 적도 있다. 그는 특출한 재능으로 주목받는 아이였다. 리버 오크 초등학교의 영재 프로그램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우주 꿈꾸던 아이, 세계 최초 온라인 서점을 탄생시키다
제프는 고등학교 때는 공상과학 소설을 탐독했다. 우주인이 등장하는 ‘스타트랙’ 시리즈도 즐겨 봤다. 제프는 마이애미 팔메토 고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졸업생 대표로 축사를 한 그는 당시 지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주에 호텔과 놀이공원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 제프는 유일하게 프린스턴대에만 응시했다. "거기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을 따라 이론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생애 최초의 좌절을 경험한다. 뛰어난 물리학과 학생들 틈에서 자신은 잘해야 중간 수준의 물리학자가 되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후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986년 제프는 프린스턴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벨 연구소, 인텔 등 최고 유망 기업들이 그에게 입사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가 택한 곳은 벤처기업 피텔(Fitel). 제프가 첫 직장을 선택한 기준은 ‘안정’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미국 맨해튼에 위치한 피텔은 글로벌 주식 거래 네트워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술담당 이사를 맡은 제프는 23세의 나이로 제트기를 타고 세계를 누볐다. 영국, 일본, 호주 등지의 계정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1988년 제프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IT(정보기술)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26세에 그는 역대 최연소 부사장에 올랐다. 하지만 일상적인 업무에 곧 싫증을 느꼈다. 그런 제프를 사로잡은 이가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회사 D.E.쇼앤컴퍼니를 이끌던 데이비드 쇼였다.

제프는 1990년 D.E.쇼앤컴퍼니의 부사장으로 입사한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 박사인 데이비드는 제프에게 지적 감화를 주었다. 제프는 이곳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팀을 이끌었다.
제프가 D.E.쇼앤컴퍼니와 결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온라인 서점’에 대한 견해차였다. 당시 쇼는 제프에게 온라인 신규 사업 개척 프로젝트를 맡겼다. 웹의 가능성에 매혹된 제프는 전자상거래의 잠재력을 분석했다. 책은 전자상거래에 가장 적합한 상품이란 결론을 얻었다. 지난 10년간 출판계의 데이터베이스 정리 작업이 끝난 데다 보관과 운반이 쉽고 비용도 싸게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쇼는 그의 제안을 현실성 없다며 거절했다. 1994년 제프는 연봉 100만달러짜리 직장을 미련 없이 떠났다. 아내 매킨지와 미국을 동서로 횡단하는 여행을 떠나며, 자동차 안에서 사업계획서를 썼다.

그이 사업계획은 ‘오프라인 서점 중 가장 큰 서점보다 열 배 이상 큰 규모의 초대형 온라인 서점을 만든다.’였다. 최종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떠난 여행에서 부부는 시애틀에 정착하기로 합의했다. 1994년 7월. 제프는 시애틀에 집을 한 채 구해 ‘카다브라’의 사무실로 삼았다. 제프 베조스는 인터넷 상거래로 팔 수 있는 물품을 고민했다.
‘제품이 균일해야 하고, 재고와 배송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결국 소재를 서적으로 결정하고, 제프는 양아버지에게서 3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 첫 투자자인 셈이다. 1995년 7월16일, 제프 베조스의 거대한 제국 아마존이 첫 걸음을 시작했다. 사실 제프 베조스는 회사 이름을 처음에는 마술의 주문처럼 소비자의 주문이 많이 쏟아지라는 의미에서 ‘아브라카다브라’에서 이름을 따 ‘카다브라 Cadabra’로 정했다.

하지만 이 이름을 듣고 친구가 "뭐라구? 회사 이름이 ‘시체 Cadaver’라고?"하는 바람에 ‘치열함 Relentless’으로 바꿨지만 이 이름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바로 ‘아마존닷컴 Amazon.com’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유역과 수량으로 두 번째를 압도하는 아마존 강에서 따온 것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판다’ 그의 시도는 신선했지만 성공 가능성을 쉽게 점칠 수 없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었다. 제프 베조스는 고객의 주문이 들어올 때면 벨이 울리도록 했다. 처음에는 가끔씩 울리던 벨소리가 몇 개월 후 시끄러워서 일을 못할 정도로 울려댔다. 성공이었다. 그의 사업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당장 몇 푼의 이익보다는 장기적 성장과 시장 확대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아마존이 취급하는 물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CD, DVD를 비롯해 각종 소프트웨어, 의류 등으로 확장되었다.

창업 2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
1997년, 아마존은 역사적인 날을 맞는다. 5월15일, 창업 2년 만에 아마존닷컴은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당시 공모가는 주 당 18달러. 이제 아마존닷컴은 미국 유통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승승장구하던 아마존에도 위기는 있었다. 2000년 인터넷 사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주당 100달러에 이르던 주가가 6달러로 추락했다. 한때 100억달러에 육박하던 그의 재산도 2002년에는 15억달러로 줄었다. 베조스는 "단기간의 주가 변동에는 관심 없다. 고객에게 집중하자"고 직원들 독려했다. ‘종합 인터넷 쇼핑몰’ 구축을 위한 사업 다각화도 꾸준히 진행했다.
2003년 아마존은 창업 이후 최초로 3500만달러 순이익을 기록했다. 아마존은 인터넷기업 거품 붕괴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알짜 기업으로 부상했다.
아마존은 단지 ‘유통 기업’에 머물지 않았다. 데이터베이스(DB)부터 검색까지 웹과 관련된 기술력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며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을 꾀했다. 그리고 베조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당시 투자했던 클라우드 컴퓨팅과 웹스토어 서비스 부문에서 큰 수익을 내는 중이다.
제프 베조스를 보면, ‘꿈의 크기는 성공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남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전력투구해왔기 때문이다. 미래의 기회를 위해 현재의 안정을 기꺼이 희생하는 제프 베조스의 혜안(慧眼)은 아마존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취재_ 유인경 기자

2021-05-21 10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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