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 주제

미래가 불확실해도 기업의 미래 예측이 중요한 이유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미래예측의 어려움과 잘못된 예측이 초래할 위험성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미래예측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은 전략적 민첩성과 위기 대응력을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변화가 빠른 IT 산업에서는 미래 예측 활동이 산업 주도권 강화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기업 미래 예측의 중요성을 알아본다.

변화 감지에 미래 통찰 더해져야
정보의 디지털화와 인터넷/모바일 기술의 발전, 다양한 시장조사기관과 컨설팅사의 활동에 힘입어 사업 환경 변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로부터 자사의 사업 활동에 중요한 미래통찰(Insight)을 뽑아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진정 중요한 미래 통찰은 외부 정보에 자사 관점을 전략적으로 결합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미래 통찰 역량은 기업 정보활동을 수년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체득되는 고차원의 암묵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미래 예측에 반드시 대형 전문 조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해외 기업들에서 미래 예측 담당 조직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BMW처럼 미래 예측에 특화된 별도 연구 조직을 갖춘 곳도 있었지만 이는 드문 케이스였다. 오히려 필립스나 다임러처럼 제품 디자인 부서 차원에서 미래 예측을 전개하거나, 도이치방크, 포드 자동차, 시스코처럼 본사 스탭 조직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이처럼 미래 예측 기능의 운용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은 결국 대규모 조직이나 고유한 예측 방법론의 확보가 미래 통찰력을 높이는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의 지속성과 네트워킹 범위일 수 있다. 조직이 작더라도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많이 쌓이고, 외부 시각을 다양하게 입수할 수 있어야 외부 변화 감지나 미래 예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 변화의 빠른 감지와 해석만이 미래 준비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여기서 얻어진 미래통찰이 대응 전략 마련, 나아가 전략 실행과 연계될 때 미래 선견 활동은 비로소 제 힘을 발휘한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 셈이다. 어느 기업 못지않게 트렌드 연구와 미래 예측에 열심이었던 노키아도 산업 경쟁 형태에 대한 고정 관념, 과거 성공 공식에 대한 집착,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때문에 기존 사업 방식을 고수하다가 결국 몰락했다.

혁신 활동의 촉발자, 전략가, 반대자 역할
독일의 미래학 전문가인 Rohrbeck에 따르면 미래 예측의 결과들은 기업 혁신 활동에 촉발자(Initiator), 전략가(Strategist), 반대자(Opponent)의 역할로 활용될 수 있다. 새로운 혁신의 계기를 마련하고, 혁신 전략의 방향성을 수립하거나, 혁신을 가로막는 기존 고정관념에 반기를 드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립스나 다임러는 미래 예측을 차세대 제품 콘셉트와 디자인을 촉발하는데 적극 활용한다. 필립스의 경우 독립 사업부인 Philips Design을 통해 상시적으로 다양한 미래 가전제품의 콘셉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사용자(현실 경험), 문화(최신 트렌드), 사회(패러다임, 가치, 욕구)의 미래상에 중점을 두고 미래에 요구될 경험 원형(Experience Prototypes)을 도출하는데 주력한다.
다임러도 1979년부터 30년 넘게 미래 예측 조직인 STRG(Society and Technology Research Group)를 운영하고 있다. 인력 40여명 규모의 다학제적으로 구성된 STRG에서는 ‘거대 도시화에 따른 자동차의 역할 변화’, ‘미래 럭셔리 차량의 콘셉트’ 등의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한편 지멘스는 미래 예측 활동을 혁신 전략 수립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즉 로드맵을 통해 현재 사업 분야의 중단기 비전 및 전략 방향을 수립하고, 장기 전략은 메가 트렌드에 따른 미래 시나리오로 구체화한 후 최종적으로 장기와 중단기 두 결과물을 통합해 전략적 비전을 수립한다. 폭스바겐도 전략 수립 과정에 중장기 미래 연구를 활용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2008년 친환경, 스마트, 연결성, 안전을 골자로 미래 자동차의 콘셉트를 담은 ‘비전 2028’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혁신 방향성을 담은 ‘전략 2018’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시장 분석을 활용한 중단기 예측과 기술, 사회, 환경에 대한 포괄적 미래 연구에 기초한 장기 예측이 결합되어 활용되었다.

산업 주도권 강화 위한 마케팅 수단
나아가 미래 예측 결과는 새로운 혁신 방향성을 창출하는데 활용될 수도 있다. 최근 기업들 중에는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Social Innovation)을 추진하는 사례가 많다. 이는 다양한 미래 글로벌 트렌드 관련 현안들을 기업이 혁신 기술 및 비즈니스를 통해 해결해, 경제적 실리와 사회적 대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미래 예측 결과를 산업 리더십 강화 목적으로도 활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양한 신기술과 미래관(Future View)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전자/IT 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기술의 봇물 속에서 특정 신기술, 미래관이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투자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자신들의 미래 비전과 기술 전략을 적극 공개, 전파해 우군을 확보하고 산업 주도권을 확대하려 한다.

MS는 미래의 컴퓨터 사용 시나리오를 2011년에 Future Vision이라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공개하여 주목을 받았다. 인텔의 개발자회의(IDF)나 애플의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도 이러한 맥락에서 개최된다. 한편 시스코의 미래학자 Dave Evans는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 트렌드를 예측하고 시스코의 미래 역할을 홍보하는 일종의 기술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는 10년 뒤의 공장, 이동성, 에너지, 사물 인터넷 등 다양한 미래 연구들이 발표되며, 이와 관련해 지멘스가 현재 수행 중인 R&D, 신사업들의 현황도 함께 제시된다. 미래 보고서이자 미래 지향적 기업 이미지를 전파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는 셈이다. 이러한 산업 리더십 강화 방식은 자동차 등 내구재 기업들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의 Das Auto, 다임러의 Technicity는 원래 회사 사보였지만 지금은 최신 차종 소개를 넘어 미래 자동차 기술 개발 동향과 미래 이동성 비전을 상세히 제시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위험관리 위한 기초 자료 제공, 기업변신 위한 나침반
최근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게 증대되면서, 불확실한 사업 위험들의 예측과 대응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폭넓은 예측력과 통찰력에 기반한 사업 위험 관리를 전사 경영 체계에 통합하는 기업들도 관찰된다. 독일 자동차 회사 다임러는 중장기 사업 리스크를 2년 단위로 분석, 모니터링하고, 리스크 발생가능성과 영향력을 정량적으로 파악하여 정기적으로 이사회와 운영진에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도이치 텔레콤은 미래 예측 방법의 하나인 기술 레이더 기법을 해킹, 멀웨어 등 네트워크 위협의 평가 및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엔진 제작사 롤스로이스는 사업성과를 2~3년도 아니고 10년 후까지 예측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시장 수요 및 자사 수익에 대한 개별 위험의 영향이나 사업부별 미래 매출 변화 정도에 대한 종합적인 정량적 분석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위험은 수치로 정량화하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미래 위기 예측에는 시나리오 기법이 많이 활용된다. 유럽의 에너지 기업인 쉘(Shell)은 이미 1970년대부터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친환경 트렌드 부상에 대한 1990년대의 시나리오 예측은 쉘이 2000년대 초반 청정에너지 분야 사업을 남보다 빨리 진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쉘처럼 시나리오 경영을 계속 고도화시켜 왔고, 최근에도 2100년까지의 에너지 전망 시나리오 나 미래 도시화 지속과 에너지 사용 패턴 변화 시나리오를 공개하는 등 시나리오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미래 예측 활동은 궁극적으로 사업 영역이나 사업 모델 자체를 바꾸는 사업 변신(Business Transformation)에도 활용될 수 있다. 흔히 기업들은 외부 충격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나 경영진의 남다른 미래 통찰에 의해 선제적으로 사업 변신을 추진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분석대상 기업들 중에서 이러한 선제적 사업 변신을 실행한 기업은 찾기 힘들었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다수 미래 선견 활동이 사업 변신의 방아쇠 역할은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래 선견은 기업 변신에 어떤 쓸모가 있는 것일까? 분석 대상 기업들의 사업 변신 경험을 살펴보면, 미래 예측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
첫째, 미래 예측은 사업 변신 전에 경영층의 위험 신호 민감도를 높여 위기가 왔을 때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든다. 미래 예측이 종종 내부 통념과는 다른 외부의 반대 시각을 제공해 경영층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에 확고한 변신 의지가 생겼을 때 사업 전환의 유용한 나침반이 된다. 변신 과정에서는 수없이 많은 논란과 직원, 주주들의 동요가 발생한다. 이때 설득력 있는 미래 예측에서 도출된 명확한 방향성 제시가 있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인식-전략수립-전략실행의 유기적 연계 중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미래 트렌드 변화를 내부적으로 재해석해 혁신 활동, 산업 리더십 강화, 위험 관리, 사업 변신 등 경영 활동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래인식-전략수립-전략실행의 유기적 연계 방식을 구축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미래 예측 결과의 정확도보다는 유연한 대응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장기 트렌드 변화에 중점을 두면서 다양한 중단기 시나리오를 통해 전략적 민첩성을 높이고 위기 대응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또 미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가급적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미래를 바꿔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취재_ 윤봉섭 기자

2021-05-04 25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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